전통 은행들이 메타버스로 달려가고 있다. JP Morgan과 HSBC가 올해 2월과 3월에 각각 Decentraland와 The Sandbox에 가상 부동산을 구입했다. 블록체인과 웹 3.0을 기반으로 한 메타버스에서 가상화폐, NFT 등을 주요 거래 수단으로 하는 DeFi에 전통적인 은행들은 오랫동안 보수적인 입장을 보여왔으나, 핀테크 기업들과 인터넷 전문 은행이 주도하는 은행권의 디지털 혁신에 설 자리를 잃어가면서 메타버스를 핵심 무기로 삼아 반격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대형 은행들의 메타버스 진출
2조 6,000억 달러의 자산을 관리하는 미국의 대형 투자 은행 JP Morgan은 올해 2월 Decentraland의 메타주쿠 내에 가상 라운지 Onyx를 오픈했다. Onyx는 202년 출범한 JP Morgan의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전담 사업부다. 라운지에 들어서면, JP Morgan의 CEO인 Amie Dimon의 초상화, 호랑이 아바타, 그리고 두 개의 벽걸이 디스플레이가 있다. 디스플레이 중 하나는 스마트 계약을 사용하여 Decentraland에서 결제하는 방법을 안내하는 비디오 데모이고, 다른 하나는 JP Morgan의 블록체인 프로젝트의 타임라인을 보여준다.
Yahoo Finance에 따르면 Decentraland의 월간 활성 사용자는 약 30만명, 일일 사용자는 1만 8,000명 수준이다. 이용자는 이곳에서 가상화폐 마나(MANA)로 부동산을 거래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블룸버그는 “JP Morgan이 가상자산과 블록체인 생태계의 인프라 구축을 위해 적극 투자에 나서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3조 달러 이상의 자산을 감독하는 홍콩 기반의 대형 투자 은행 HSBC도 올해 3월 The Sandbox에 가상 부동산을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HSBC는 보도자료를 통해 “The Sandbox 내에서 신규 및 기존 고객을 위한 혁신적인 브랜드 경험을 창출함으로써 e스포츠, 게임 등 모든 분야로 확장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HSBC의 아시아 태평양 지역 최고 마케팅 책임자인 Suresh Balaji는 “Sandbox와의 파트너십 체결로 메타버스에 진출함으로써 신규 및 기존 고객을 위한 혁신적인 브랜드 경험을 창출할 수 있게 되었다”라고 밝혔다.
아울러 HSBC의 경영진들은 Sandbox와의 이번 파트너십의 목표가 “교육적이고 포용적이며 접근 가능한 경험을 공동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Sandbox의 최고 운영 책임자이자 공동 설립자인 Sebastien Borget도 “HSBC와 같은 신뢰 할 수 있는 기관의 합류는 메타버스에 대한 확신을 높이는데 의미를 갖는다”라고 말했다. The Sandbox는 4,000만 건의 글로벌 다운로드를 기록했으며, 120만 명의 월간 활성 사용자를 보유하고 있다.
또한, 미국의 대형 은행 중 하나인 American Express도 올해 3월 NFT와 메타버스 관련 상표 출원 7건을 미국 특허청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에는 소비자가 메타버스에서 온라인 비즈니스 거래를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e커머스 소프트웨어, NFT 거래를 위한 온라인 마켓플레이스 구축 도구, 메타버스에서 송금 및 은행 서비스를 지원하는 솔루션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메타버스 플랫폼, 다양한 산업 부문의 진출 및 투자 유치로 성장 잠재력 커져
메타버스 내에서의 가상 부동산 투자 열기도 빠르게 달아오르고 있다. 메타버스 데이터 분석 업체인 MetaMetric Solutions에 따르면, 2021년 투자자들은 가상 부동산 투자에 5억 100만달러 이상을 지출했다. 현재 가상 부동산을 판매하는 플랫폼들로는 The Sandbox, Decentraland, Cryptovoxels 및 Somnium이 대표적이다.
전통 은행의 선두 주자라 할 수 있는 JP Morgan과 HSBC가 가상 부동산 투자를 통한 메타버스 진출에 나섰다는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한 일이다. 두 은행은 서로 다른 강점을 가진 두개의 플랫폼을 각각 선택했다. Sandbox가 게임에 더 중점을 둔 반면 Decentraland는 경험과 사교에 더 중점을 두고 있으며, 가장 큰 차이점은 Decentraland는 현재 정식 서비스를 제공 중인 반면, The Sandbox는 아직 베타 테스트 중이다.
두 플랫폼의 공통점은 모두 막대한 투자를 유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홍콩 게임 개발사 Animoca Brands의 자회사인 The Sandbox는 지난 2021년 11월 SoftBank Vision Fund 2가 주도한 펀딩 라운드에서 9,300만 달러를 모금했으며, Decentraland는 The Sandbox의 모회사인 Animoca Brands를 포함한 여러 대형 투자자들로부터 약 2,500만 달러를 모금했다.
또한 두 플랫폼은 이미 굴지의 대기업이나 브랜드와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삼성은 최근 Decentraland에 뉴욕 Meatpacking District에서 운영하고 있는 실제 플래그십 스토어와 똑 같은 가상 플래그십 스토어를 구현했다. 대형 음반 레이블인 Wanner Music Group은 올해 1월 The Sandbox에 하이브리드 뮤지컬 테마파크와 콘서트장을 건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 외에도, The Sandbox는 Gucci, 래퍼 Snoop Dogg 및 Adidas와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Decentraland와 The Sandbox의 투자 모금 및 브랜드 파트너십 현황은 다음과 같다.

메타버스와 은행의 결합, 은행 산업 패러다임의 근본적 혁신 기회 제공
현재 메타버스에서 디지털 부동산 전초 기지를 구축하거나 향후 계획을 발표한 글로벌 은행은 JP Morgan과 HSBC 뿐이지만, 두 은행을 필두로 많은 은행들이 메타버스에 진입하거나 자체 메타버스를 구축하는 등 메타버스 행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신기술 채택이 더디고 보수적인 기업 문화를 유지해오던 은행 산업은 가상화폐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해왔지만, 핀테크 기업들과 인터넷 전문 은행들이 금융권의 디지털 혁신을 주도하면서 큰 도전을 받고 있다.
여기에 가상화폐, NFT,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CBDC) 등 은행 산업에도 블록체인 기반의 디지털 화폐와 이를 주요 거래 수단으로 하는 금융 서비스들이 빠르게 확대되면서, 전통 은행들의 메타버스 진입은 결국 시간 문제였을 뿐 필연적인 수순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메타버스가 은행 산업에 제공하는 기회는?
Gartner에 따르면 2026년까지 25%의 사람들이 쇼핑, 직장, 교육, 사교 및 엔터테인먼트를 위해 하루에 최소 1시간을 메타버스에서 보낼 것으로 예상되며, JP Morgan에 따르면 매년 가상 상품 구매에 지출되는 비용은 540억 달러에 달한다. Goldman Sachs는 가까운 미래에 메타버스가 8조 달러 규모로 성장하면서, 메타버스가 만들어낸 가상 경제가 이미 세계 경제의 20~25%를 차지하고 있는 디지털 경제를 부양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렇게 성장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점쳐지는 메타버스는 은행 업무를 개선하고 최적화할 수 있는 잠재력도 큰 것으로 평가된다.
우선, 물리적 영업점을 방문하지 않아도 집에서 편하게 거래하고 은행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되면서, 은행 계좌 개설 및 대출 신청과 같은 기본적이면서도 단순 노무에 가까운 은행 업무가 늘어날 가능성도 있지만, 이는 전통 은행 서비스에 무관심했던 MZ 세대의 관심을 환기시킬 수 있는 효과가 발생한다.
그리고, 은행은 가상화폐, NFT와 연관된 다양한 금융 서비스를 신규 출시하면서 전통 은행권의 가상화폐 수용이 빨라지고, 은행의 수익 구조에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일례로, 은행은 사용자가 가상 부동산을 구매할 때 가상 부동산 NFT를 담보로 대출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메타버스 내에 NFT 거래 전용 지점을 개설하거나 DeFi와 관련한 각종 보험 서비스를 출시할 수 있다.
사용자가 아닌 경영진과 직원의 입장에서도 은행의 내부적 운영 방식을 완전히 바꿀 수 있다. 비즈니스용 3D 공간의 생성, 즉 업무 공간의 디지털 트윈 기술을 통해 현실과 똑같은 직원 교육 공간, 고객 소통 공간 등을 마련할 수 있다. 은행들은 이러한 업무 환경의 변화를 통해 과거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업무의 효율을 높일 수 있다.
메타버스와 은행의 결합으로 은행이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의 형태와 범위가 상상 이상으로 다양해지면서 은행에게는 비즈니스 모델의 근본적 혁신의 기회를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해결 과제
그러나, 일각에서는 메타버스와 은행의 결합이 기대만큼의 효과를 낼 수 있을 지에 대해 회의론을 제기한다. 메타버스는 “비대면 채널이 확대되는 시대적 흐름을 거스를 수 없는 필연적인 전략”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지만, 테크 기업들과 달리 디지털에 대한 이해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전통 은행들이 메타버스, 블록체인, 웹 3.0 등 첨단 기술의 개념을 실질적으로 이해하고 적용시키기까지 꽤 오랜 시간과 시행착오가 필요하는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산업 전반의 디지털 가속화와 핀테크 업체들의 시장 잠식,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인 MZ 세대의 신규 고객 확보 필요성 증가, 비대면 자산 관리 수요 증가 등으로 전통 은행들의 디지털 금융 경쟁력 확보가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이를 위해서는 메타버스 선점이 필수적이지만, 보수적인 문화를 가진 시중 은행과 최첨단 메타버스와의 교집합이 디지털 생태계 확장으로 실제로 이어질지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또한, 메타버스 사용자 층의 전통 은행 서비스에 대한 인지도나 관심이 전통 은행의 실질적인 변화를 유도할 만큼 높지 않은 점도 과제로 지적된다. 현재 메타버스의 주 사용자층은 10대가 대부분으로 메타버스를 차세대 SNS나 게임 플랫폼으로 생각하지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는 인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메타버스 안에 자리를 잡기 시작한 전통 은행의 입장도 아직은 새로운 수익 모델의 창출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지는 않다. 젊은 고객층을 진성 고객으로 확보한 인터넷 전문은행과의 경쟁에서 더 이상 뒤쳐지는 않으려는 자구책의 성격이 강한 것이다. 가상세계에 익숙한 MZ세대를 대상으로 전통 은행의 브랜드를 전달하려는 프로모션적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MZ세대를 포함한 소비자 층과 은행의 메타버스를 대하는 인식과 태도의 간극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전통 은행의 좀 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그리고, 메타버스는 VR · AR, 인공지능, 기계학습 및 블록체인과 같은 다양한 기술의 융합의 결과로 구동되는 디지털 플랫폼이다. 그러나, 관련 산업은 대규모 보급을 위한 주변 기기를 만드는 초기 단계에 있다. 단말 가격은 저렴해야 하는 반면, 강력한 소액 결제 처리 기능 및 긴 배터리 수명 등 갖춰야 하는 조건이 까다롭다. 아직 메타버스의 구현 수준이 스마트폰의 핀테크 서비스 구동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적 한계는 현재 핀테크 기반의 인터넷 전문 은행들이 온라인 금융 서비스 혁신을 주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통 은행의 핀테크 진영과의 경쟁에 불리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즉, 메타버스에서도 핀테크 기업들에게 금융 서비스의 주도권을 내주게 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전통 은행권은 디지털 금융 서비스 패권 다툼에서 핀테크 진영에 반격할 회심의 무기로 메타버스를 활용해야 하는 만큼, 기술의 현실적 한계를 우회할 수 있는 파격적인 아이디어의 전환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 서비스에서 얼마나 많은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날 것인지, 메타버스와 은행의 결합은 어떤 양상으로 전개되고, 핀테크 진영과의 패권 경쟁을 통한 디지털 금융 산업의 패러다임은 어떤 양상으로 진화할 지 아직은 가늠할 수 없다. 하지만 물리적 세계와 디지털 세계 사이의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서비스 제공업체가 되기 위한 전통 은행의 베팅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